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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록

책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는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거의 다 잃어갔다. 기다려준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림자를 먹고 자란 내 자의식은 그 친구들마저 단죄했다. 연봉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친구는 볼 것도 없이 속물이었고, 직장생활에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간다고 고백하는 친구를 이해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으나 그 조차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나뿐인 이단 우산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성격 급한 할아버지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퍼지는 우산이었지만 버튼도 듣지 않았고 수동으로 펴지지도 않았다. 비는 굵은 방울로 떨어져내렸다. 이런 날씨에 우산 하나 제대로 챙겨오지 않은 할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골목 끝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우산을 살 만한 돈이 없었다.

"이걸 왜..."
"괜히 그러지 말고 받아. 할아버지가 꼭 너 주라고 하셨어."
엄마즌 가방에 돈뭉치를 넣으며 가는 길에 은행에 들러 입금하라고 말했다. 내 계좌로 돈을 보내줄 수도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지폐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모은 돈인지, 구지폐가 아래쪽에 쌓여 있었다.

쇼코는 우리 집에는 들르지 않았다. 집 근처의 천변에도, 쇼코가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던 나의 모교에도 같이 가지 않았다.
"다음에 갈게. 그래야 또 올 이유가 생기지"

[신짜오 신짜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도 아줌마는 엄마에 대한 칭찬을 잘했다. 웃는 모습이 예뻐서 함께 있으면 방이 다 환해지는 것 같다. 두상이 동그라니 예쁘다. 걸음걸이가 사뿐하다. 옷맵시다 좋다 (..)
아줌마는 이런 이야기를 망설이지 않고 했고 그럴 때면 엄마는 얼굴을 붉혔다. 아줌마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몰랐던 엄마의 좋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졌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곰은 마지막 며칠 동안 너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 그런데도 곰아, 부르면 애써서 고개를 들고 꼬리를 치는거야. 곰아, 밥 먹어, 말하면 곰은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했어. 그런 곰 앞에서 울었어. 곰이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죽어간다는 걸 느꼈거든. 한 밤을 자고 나서 개집에 가니 곰이 사라졌더라."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한지와 영주]
남자친구는 침묵했다.
마지막 통화에서 내가 수도원에 계속 남을 것이고,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을 때, 남자친구는 잠깐 한숨을 쉬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통화를 하고 사 주가 지났을 때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난 삼 년간 만나줘서 고마웠어. 미안하지만, 이제는 그만 만나자.'
그는 언제나 내가 자신을 '만나주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일방적으로 한국을 떠나와서 미안하다고, 나도 그동안 고마웠다고 문자를 보냈다. 무감한 이별이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이라는 좁은 사회로 진입하면서 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다. 대학원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 내 태도가 굉장히 유아적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여자는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한번 뒷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를 나는 밥먹듯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꽤나 그 룰을 잘 따라왔다고 믿었다. 수업과 답사에 적극적이었고 뒤풀이에도 참석해서 늦게까지 웃고 떠들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엔 아무 이유 없이 울었다.

[먼 곳에서 온 노래]

선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진심을 말할 때, 선배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금씩 떨렸다.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베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단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미카엘라]

엄마의 감사 타령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엄마의 초라한 현실을 봤다. 언제든 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일에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돈이 있다면, 부유한 부모나 남편이 있다면 통증을 견뎌가며 매일 열 시간씩 서서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차라리 엄마가 스스로의 처지에 솔직해져서 불평하기를 바랐다. 초라한 현실에 대한 엄마의 감사가 얼마간은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엾어 하는 처지를 감추기 위해 계속 긍정의 말을 해댄다. 사람들은 긍정적이라고 하는데 이 조차도 이미 사람들은 알고 있을 수 있다. 긍정적인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결혼 안 할거야, 엄마."

미카엘라는 어릴 대부터 그런 얘길 했었다.

"그런 얘기 하는 애들이 먼저 시집가게 되 있어."

여자는 뾰로통한 얼굴로 그런 얘기를 하는 딸이 귀여웠다. 그러던 애가, 나이 서른이 되어서도 같은 얘기를 하는데 그 말이 진심인가 싶어서 여자는 슬그머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부와 모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나이 때부터 결혼을 하지 않을거라고 했다면 진심일 것이다. 애기도 안다. 결혼생활이 이런거라면 나는 안하고 싶다는 것을

 

밥상머리에서 아빠는 말했다. 자본이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앞으로는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 속으로 떨어지게 될 거라고.

어쩌라는 건가. 아빠, 지금 이 집안을 빈곤 속으로 떨어뜨리는 주범은 세상도 자본도 아니고 아빠 자신이다.